나의 이야기

[스크랩] 말러 이야기 - 빈 세기말 예술가들의 뮤즈 알마 말러-베르펠 김문경

서숙 2015. 2. 11. 22:15

빈 세기말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영원한 여성알마 말러-베르펠




알마의 전기적 영화 '바람의 신부' 극장 트레일러

말러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으로 알마와의 결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알마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음악가의 반려자에 그치지 않지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작곡가 알렉산더 쳄린스키,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문필가 프란츠 베르펠 등 그녀와 결혼했거나 혹은 염문을 뿌린 이들의 면면이 실로 화려합니다. 알마는 이들 중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펠 이렇게 세 명의 예술가와 차례로 결혼했는데, 세 남편의 성을 모두 사용하면 이름이 너무 길어지게 되므로 두 번째 남편의 성을 생략한 알마 말러-베르펠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좌로부터 알마의 아버지 에밀 야콥 신틀러, 알마의 어머니 안나 폰 베르겐, 알마의 계부 카를 몰


어머니(중간), 이복동생 그레테(우)와 함께

알마는 화가 에밀 신틀러를 부친으로, 성악가 안나 폰 베르겐을 모친으로 하여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부친의 경제 상태가 좋지 않아 제자와 집을 공유하여 거주했는데 이때 어머니가 제자와의 불륜으로 그레테라는 이복동생을 출산하기도 했지요. 알마가 13세 되던 해 아버지 에밀 신틀러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5년 후 아버지의 제자인 화가 카를 몰과 재혼했습니다. 알마의 화려한 남성편력은 어쩌면 모계유전일지도 모르지요. 알마의 딸 안나 말러는 생애에 5번 결혼해서 적어도 회수에 있어서는 알마를 능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과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상처를 받은 알마는 일찍부터 음악과 문학에 눈을 떴습니다
오르간 주자 요제프 라보르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극장감독 막스 부르크하르트에게서 니체의 철학을 전수 받았으며, 쳄린스키에게는 작곡을 배웠습니다. 빈의 유명화가 클림트와는 분리파 화가인 계부 카를 몰 덕분에 일찍부터 교제하였고 그와 첫키스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부모가 클림트와의 만남을 철저히 금한 탓에 그녀의 관심사는 작곡스승인 쳄린스키에게로 옮아갔습니다. 선생님에게서 작곡만 배운건 아니라지요. 그를 못생겼다고 놀리면서도 진한 스킨쉽을 나누는 등 스승·제자 이상의 친밀한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쳄린스키는 결국 '헛물'만 켠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알마는 22세가 되던 해인 1901년 11월 7, 한 사교계 파티에서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말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19년이라는 어마어마한 나이차가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급물살을 타게 되어 이듬해 3 9일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릅니다. 그것도 이미 말러의 애를 혼수로 가진 채.

   
좌로부터 막스 부르크하르트, 구스타프 클림트, 알렉산더 쳄린스키, 구스타프 말러

알마는 결혼 후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폈지만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결혼생활에 점차 염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에고이즘에 넌더리가 난 알마는 결혼생활 8년차인 1910년 외도를 저지르고야 맙니다. 요양차 온천에 들렀다가 그로피우스라는 젊은 건축가와 사랑에 빠진 것이죠. 이 사실을 알게 된 말러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과 상담하는 등 신경쇠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상을 추구한다는 메리 콤플렉스를 진단받고 말러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전에 없던 선물과 애정편지의 공세가 이어졌죠. 그로부터 1년 후 1911, 말러는 결국 교향곡 제10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0번 교향곡은 알마의 외도와 그로 인한 말러의 정신적 충격 그리고 용서의 고백을 진솔하게 담은 한 편의 불륜 드라마이죠.

 

말러의 죽음은 알마에게 새로운 전환점이었습니다. 말러의 기일 5월 18일이 하필이면 바람을 피웠던 연하남 그로피우스의 생일과 동일했던 것은 알마에게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말러의 주치의 요제프 프란켈, 작곡가 프란츠 슈레커, 생물학자 파울 캄머러와의 연애를 거친 알마는 표현주의 화가 코코슈카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알마의 연애사 가운데에서 코코슈카와 가장 뜨거운 사랑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코코슈카의 지나친 질투심으로 결혼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결혼 후 자신을 속박했던 말러에게 그렇게 데였는데 코코슈카는 한술더 뜰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결국 조금은 만만해 보이고 호감도 잃지 않았던 그로피우스와 재혼합니다


그로피우스와의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바우하우스 활동으로 바쁜 틈을 타 만나게 된 베르펠이 결국 알마의 마지막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50세가 되던 1929년에 11세 연하남인 베르펠과 결혼하게 된 것이죠. 물론 세 번째 결혼 전에 그로피우스가 순순히 이혼 도장을 찍어주었고요. 베르펠과의 결혼생활 중 잠깐 요하네스 홀렌슈타이너라는 사제와 한눈을 팔기도 했는데 그래도 자비롭게 마지막 남편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잡게 되어 유태인이었던 베르펠 부부는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미국 LA로 망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빈 예술가들의 절대적인 뮤즈였으며 영원한 여성이었던 알마는 유명한 남편들이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196485세를 일기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좌로부터 발터 그로피우스, 요제프 프란켈, 프란츠 슈레커, 파울 캄머러

  
좌로부터 오스카 코코슈카, 프란츠 베르펠, 요하네스 홀렌슈타이너


알마가 세상을 떠난 후 하버드 교수 탐 레러가 알마의 남성편력을 풍자적으로 부른 노래 '알마 '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넘쳤던 알마 말러-베르펠은 조신한 아내나 며느리감으로는 난감하지만 시대를 풍미한 대단한 여성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세기말의 수많은 걸작이 그녀를 향한 열망으로 인해 탄생했고 빈의 예술계는 그녀로 인해 더 없이 풍요로웠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작곡한 리트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를 들어보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알마의 애착이 새삼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곡입니다. (김문경)


알마의 리트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출처 : 전주중고피아노
글쓴이 : 바람 원글보기
메모 : 알마 말러